문화예술/책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이사카 코타로 / 伊坂幸太郎)

기로송 2024. 3. 3.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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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이사카 고타로 장편소설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이웃집 청년과 서점을 습격하는 현재의 ‘나’ 부탄에서 온 청년과 애완동물 학대범을 추격하는 2년 전의 ‘나’ 두 개의 시간이 교차할 때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시나’가 화자인 ‘현재’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고토미’가 화자인 ‘2년 전’의 이야기가 번갈아 진행되는데, ‘현재’와 ‘2년 전’을 오가며 읽어 나가다 보면 두 시간 축을 메우는 공통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추리가 시작된다.
저자
이사카 고타로
출판
현대문학
출판일
2014.05.30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의미 

 

작품 중간에 설명이 있지만, 집오리는 고토미, 내국인 혹은 일본인을 상징하고, 들오리는 도르지, 즉 외국인과 이방인들을 상징한다. 코인로커는 극 중 등장하는 부탄의 신 혹은 일본의 신, 모든 신들을 가두는 상징으로 등장한다. 

 

 

이사카 코타로의 이번 작품은? 

 

이전 포스트인 오듀본의 기도에서도 소개를 했지만, 일본의 소설가로 오락용 소설(?)의 대가이다. 이야기가 시간, 공간에 따라 몇가지씩 다른 이야기처럼 흘러가다가도 그 나눠진 이야기들이 어느 순간 접점을 만들고 하나로 합쳐지면서 발견되는 시너지, 혹은 반전등을 매력적으로 쓰는 작가이다. 또 흥미로운건 각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또 다른 소설에서 잠깐 등장하기도 하고, 주축의 인물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각각의 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출연하는지를 찾는 재미도 있다. 

 

내가 처음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을 만나 그의 작품만 10편 넘게 읽은걸 보면 빠져들면 정신 못 차릴 이야기를 쓰는 게 분명하다. 물론, 그 이유에는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는 솜씨나 인간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풀어내는 방식등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 소설은 2006년에 발간된 소설로 2008년에 영화화가 되기도 했다. 주인공인 도르지역에 에이타, 가와사키 역에 마츠타 류헤이가 캐스팅되어 열연을 펼쳤는데, 에이타는 노다메 칸타빌레에서 바이올린을 켜는 미네역으로 출연했었고, 마츠타 류헤이는 영화 나나의 렌 역으로 출연했었다. 

 

 

줄거리 

https://youtu.be/DenXklJdWOA?si=5MSINLpkQQPUxGD2

 

이야기는 현재와 2년 전을 번갈아 보여주며 두 명의 화자가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현재의 화자는 대학생인 시나, 2년 전의 화자는 대학생이자 펫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고토미.

두 사람의 이야기에는 공통된 인물이 몇 등장하는데 그중 하나인 가와사키는 이 이야기의 키를 가지고 있다. 

 

현재. 

대학생인 시나는 학교 입학을 맞아 도시의 한 아파트로 이사를 오게 된다. 짐정리를 마치기도 전에 집에 들이닥친 손님(?)인 꼬리가 말려있는 고양이와 한바탕 씨름을 하게 된다. 고양이를 쫓고 다시 밥딜런의 <블로인 인 더 윈드>를 부르며 짐정리를 하는 찰나 이웃에 사는 가와사키라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가와사키는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인상에 검은색 셔츠와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신비하고 악마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시나가 그런 인상을 받던 찰나,

"나랑 같이 서점 털지 않을래?"라는 제안을 한다.

처음 만난 데다가 황당한 제안까지 하는 그를 보며 어이없어할 겨를도 없이 가와사키의 이야기에 끼어들게 된다.

 

황당한 제안이지만 이유를 듣고 싶어 가와사키에게 자조치종을 물어보니, 아파트 101호에 부탄사람인 도르지라는 외국인이 사는데 그 외국인이 실의에 빠져 두문분출하고 있고, 그를 위해 두툼하고 근사한 사전인 '고지엔'을 훔쳐 선물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시나에게 제안하는 건 가와사키 자신이 서점에 들어가서 고 지엔을 훔쳐서 나오는 동안, 가짜 권총을 들고 뒷문을 지키며 뒷문으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감시하라는 것이었다. 더불어 밥딜런의 불로인 인 더 윈드를 열 번 부르고 한번 끝날 때마다 뒷문을 차 달라는 제안까지. (왜 이런 부탁을 했는지는 이야기의 막바지에 나온다)

 

제안을 받고 시나는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다음날 뒤숭숭한 마음으로 이삿짐을 정리하다가 생필품을 사기 위해 버스를 타고 이동하게 되는데. 거기서 치한이 한 여성을 추행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시나는 내적갈등을 겪지만 결국 나서지 못하는데, 그때 하얀 피부의 여성이 치한과 대립하며 당하던 여성을 구해주게 된다. 여기서 시나는 자신이 나서지 못한 비겁함을 자책하게 된다. 

 

다음날 얼결에 나타난 가와사키에게 일전에 제안받았던 '서점을 털러 가는 일정'에 합류하게 되고, 두 사람은 국도 변 조그마한 서점을 털기 위해 가와사키가 빌린 차를 타고 가게 된다. 차 안에서 다시 한번 뒷문을 지킬 것, 밥딜런의 노래를 부를 것. 부를 때마다 뒷문을 발로 찰 것, 가짜 총을 휴대하고 있다가 비상시에 사용할 것. 등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서점에 도착하는데... 

 

2년 전

고토미는 대학생이다. 현재 부탄에서 온 외국인 유학생인 도르지와 함께 아파트에서 동거를 하고 있다. 고토미는 동네 펫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펫숍에서 주인이 나타나길 기다리던 검은 시바견이 사라지는 일이 발생한다. 하필 지금 이 동네에서는 동물들을 납치해 잔인하게 죽이는 범죄가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고토미는 더욱더 이 시바견의 행방이 궁금한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한 세단이 고양이를 치는 것을 목격하게 되고 고양이의 시체를 묻어주기 위해 도르지와 함께 공원에 방문하게 된다. 

 

공원에 고양이를 묻어주고 잠깐 쉬고 나오려는 순간, 남자 둘, 여자하나로 구성된 어떤 무리의 이야기를 엿듣게 되고, 그들이 동물들을 잔인하게 죽이고 이어 사람까지도 죽이려고 하는 애완동물 학대범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펫숍의 점장인 레이코 씨에게 들은 내용으로는 최소 20건 이상의 사건을 벌였고 그 강도가 너무 처참하고 잔혹했다고 했다. (눈알을 뽑는다던지.. 가죽을 벗긴다던지.. 그리고 쓰레기통에 버리는 / 이 부분을 잃으면서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로 분노와 역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암튼, 그 무리의 이야기를 엿듣다가 그 무리에게 들키고 말지만 다행히 그들에게서 도망치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한번 그들과 마주치게 되고, 그들은 도르지와 고토미 두 사람에게 위협을 가하는데 도르지의 대응으로 간신히 벗어나게 된다. 그렇게 위기일발의 순간에서 벗어난 기쁨도 잠시. 다음날 고토미의 버스카드 지갑을 잃어버린 것을 알게 되고, 두 사람은 불길한 예감에 휩싸이게 된다. 

 

우연히 다시 재회한 가와사키는 고토미의 전 남자친구이기도 한데, 하필이면 위기에 빠진 순간 그가 고토미의 인생에 다시 등장하게 되지만 고토미는 쉽사리 그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 모든 게 맘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다 항상 곁의 여자가 바뀌고, 자신을 다 안다는 투로 이야기하는 그가 좋게 보일리 만무하다. 

 

과연, 두 사람은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시나와 가와사키는 서점을 무사히 (?) 털고 사전을 외국인에게 건네주었을까? 

이 두 이야기의 연관은 무엇일까? 

 

감상평 

 

현재와 2년 전을 오고 가며 다른 화자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지만 타입슬립 물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결국 어느 지점에서 두 이야기가 교차하는 순간, 뒤통수를 치는 반전과 뜻밖의 이야기로 전환이 되며 그동안 곳곳에 뿌려두었던 떡밥(?)이 회수되는 순간을 맞이한다. 모든 궁금증이 해소되는 이 순간이 이 책을 읽는 묘미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오락소설로써의 충분한 요소를 갖추고 있으면서 또 이야기에 생각할 거리를 항상 던지는데 이 소설에서도 몇가지 독자들에게 역으로 생각할거리를 던져준다. 

 

1) 첫째는 소설의 제목에도 이야기하듯이 '집오리와 들오리'로 비유해서 말하고 있는 외국인에 대한 시선이다. 

부탄에서 온 유학생 도르지를 통해 이야기하듯이 내국인들은 보통 외국인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을뿐더러 외국인을 알아가려는 노력을 사서 고생이라고 표현한다. 가와사키가 도르지에게 계속 일본어를 가르치려고 하는 것도 큰 목적은 아무래도 일본인들 틈 사이에서 얕보이는 게 안타까워서였을 것이다. 

암튼 이 이야기의 당시 일본상황이 외국인들을 막 받아들이고 있었을 시점 일 것이고, 그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자고 던진 질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시나와 가와사키의 대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내가 외국인이라고 했다면 아마 상대조차 해주지 않았겠지"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는데 아마도 그랬지 않았을까? 

나도 이제는 조금 시선을 달리보긴 하지만, 특히 아시안 계열의 외국인에 대한 편견과 시선에서 벗어나 '친해지려는' 노력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2) 둘째는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즉 인간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혹은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태도는, 아무리 사람이 징그럽다고 해도 결국은 사람에게 희망을 걸어야 한다. 극 중에서 외국인에게 차별의 말을 일삼거나 친해지려 하지 않는 것도, 애완동물들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것도, 누군가를 성추행하는 것도, 모두 사람이다. 이런 '나쁜' 사람들은 징그럽다. 

하지만, 결국 가와사키가 도르지에게 친절(?)을 베풀고, 레이코가 버스에서 누군가의 성추행을 저지하고, 도르지가 인도의 잘못세운 자전거 때문에 시각장애인의 점자블록을 막은 것을 보고 자전거를 다 차버리는 것도, 고토미가 애완동물 학대범의 차를 막아 세운 것도, 또 사람이다. '나쁜' 사람들도 분명히 있지만, '착한' 사람들도 그만큼 있다. 

레이코나 도르지가 나중에 그런 일들을 행한 이유가 결국엔 고토미의 그런 '착한' 일을 하기 위함을 알았기 때문에 그것에 영향을 받아 변한 모습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람, 인간에게 희망을 걸어야 하는 이유임을 이야기한다. 

 

3) 마지막으로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약자에 놓이는 대상이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에선 많이 등장하는데 이 소설에선 애완동물 (이 책의 시대적 상황상 이렇게 표현되어 있음, 반려동물이 더 옳은 표현), 성추행을 당하는 여성, 외국인, 그리고 hiv 감염인이 등장한다. 그리고 감염인을 등장시키면서 사회적으로 한번 생각해봐야 할 거리를 던지는데, 감염인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없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대중들과 자신은 걸리지 않을 거라는 헛된 믿음이다. hiv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개인의 일이라고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고 없는 취급하는 것이 맞을까? 더 공론화시키고 사회적으로 도움을 주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자, 고 이 책에서는 이야기한다. 

 

가와사키의 대사처럼 " 이 세상 동물과 사람이 행복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돌고 도는 인생 중에 어쩌다 만난 인연이잖아 잠시 잠깐이니 사이좋게 지내야지. " 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 모든 것들 특히 동물들에게 친절함을 베풀자. 

 

기억에 남는 글귀 

 

착한 일이든 악한 짓이든 자기가 한 건 모두 자신에게 돌아와
당장은 아니더라도 다시 태어난 후에 대가가 돌아올 거야

 

인간은 필사적으로 달려들면 웬만한 일은 다 할 수 있다고 낙관하게 되었다. 

 

타고난 능력은 사용해야 한다 그거야

 

싫증이 나거나 진저리가 나거나 무서워지기 전에, 생각난 건 뭐든 당장 실천하는 게 좋아

 

우리나라 사람끼리는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통하는, 암묵적인 이해 같은 게 있잖아
그런 게 없는 외국인과 굳이 이야기하다니, 
사서 고생할 필요가 뭐가 있어

 

인생을 즐기는 비결은 딱 두 가지야. 자동차 경적을 울리지 않을 것, 자잘한 일에는 신경 쓰지 말 것

 

무의미하고 무식하며 법에 저촉되는 일,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일을 한다는데 가슴이 뛰었던 것이다. 

 

밤은 인간을 잔혹하게 만들고 솔직하게도 만들고 감상적으로도 만들지. 경솔하게 만들어

 

위기의식이 희박하기 때문이야. 텔레비전이나 주간지에서 떠들지 않으면 에이즈가 사라진 줄 알아.
자기와는 상관없는 것이라 생각하지. 이 나라는, 자기는 별일 없겠지 믿고 사는 바보들로 넘쳐난다고.

 

내가 외국인인 줄 알았다면 상대해 주지 않았겠지? 내가 외국인이라는 걸 알면 친구가 안 됐을 거 아냐

 

나는 당연히 내가 주인공이고 지금 이렇게 생활하고 있는 현재가 바로 세계의 중심이라고 믿었다.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그들 세 사람이다. 

 

 그냥, 이건 시나가 너무 비약을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나의 인생에서 나는 당연히 주인공이다. 그냥 이 순간 끼어든 내가 된 것일 뿐이지만, 또 내가 주인공인 에피소드는 존재할 테니까..

이 대사를 보니 예전에 '어쩌다 발견한 하루'에서 단오가 엑스트라인 자신을 인지하고 엑스트라로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장면이 불현듯 스쳐가네~~~

 

 

이 세상 동물과 사람이 행복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돌고 도는 인생 중에 어쩌다 만난 인연이잖아 잠시 잠깐이니 사이좋게 지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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