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록

삶의 원천

기로송 2024. 1. 3.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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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혼자 산다 코드쿤스트

 

진짜 불현듯 나혼자 산다를 보다가 코드쿤스트가 어머니랑 통화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뭔가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들의 느낌이 나면서, 그가 멋있게 인생을 살고 있는 원천이 저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럽다는 마음과 나의 삶의 원천은 영원히 저것일 수 없겠구나, 가질수 없는 것이구나 라는것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내가 사회에서 원하는 어떤 가정의 형태를 꾸릴수도 없기 때문에 어쩌면 그런 안정적이고 화목해보이고 가지고 싶었던 그 화목하고 안정적인 가정이라는 것이 나의 것이 될일은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약간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노력해서 쟁취할 수 있는 거라면 기회라도 있는 거라면 그런 기분은 안들었을텐데 .. ㅎ

왜 애니메이션을 보는가?

 

생각해보면 내가 힘들거나 잠들기전에 항상 찾는 아따맘마나 짱구는 못말려, 개구리중사 케로로 같은 애니메이션도 그 결핍에 대한 것을 채워주는 느낌의 가족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항상 찾게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 끼리 모여서 함께 식사를 하고, 서로의 매일매일을 공유하고 세상에 내편이 없다고 느낄때 어쨌든 문제가 생겼을때 서로 의지하고 도와가며 문제를 해결하는 그런 모습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그 장면들에 위로를 받고 안정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첫방문한 엄마의 집?

 

어제 (이글이 7일 새벽에 쓰여진 글이지만, 어쨌든 7일) 여느 주말보다 일찍 일어나서 생전 처음으로 엄마의 집에 갔다. 할머니가 많이 아프게 되면서 엄마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해서 오랜만에 가게 되었다. 거의 5개월만이였다. 미안한 일이지만..

변명부터하면 그 집은 어쨌든 엄마의 재혼가정이고, 아저씨도 계셔서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느낌이라 가기가 좀 그랬다. 물론, 아저씨도 편하게 대해주시고 나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지만 내 입장은 다르니까. 그리고 사실 엄마는 어떻게 느낄지 모르지만 엄마도 나에겐 그리 편한 존재는 아니니. 오히려 이젠 그동안 나를 7살때부터 독립하기전 29살까지 키워주신 엄마(새)가 더 편하고 가족같긴 하다. 어릴땐 많이 거부했지만

암튼 산본역에서 내려서 다음날이 마침 어버이날이라 카네이션과 카스테라를 사서 마을버스를 타고 한참을 들어가 도착한 엄마의 집에서 오랜만에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의 달라진 모습에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어쨌든 최대한 티를 안내고 할머니 침대 옆에서 이야기를 좀 했다. 할머니는 이제 귀도 잘 안들리시는지 내가 말하는거에 계속 되묻고 나 역시 할머니가 하는말이 어떤 말인지를 몇번 되물어야 소통이 가능했다. 사실상 거의 소통은 불가능한 상태. 마음이 아프고 불편했다. 내가 알던 할머니가 무너져가는 모습이.. 할머니는 언제나 강했고 또렸했고 나한테 항상 툴툴대도 내가 좋아하는 콜라를 집에 사두곤 했던 그런 사람이었는데.

할머니랑 잠깐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방에 있는 동안 아저씨가 아저씨의 아들과 아들의 여자친구와 함께 돌아오셨다.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엄마의 새아들과 여자친구, 엄마, 아저씨가 어버이날을 맞아 그 새아들이 사온 꽃을 할머니한테 보여주면서 인사를 나누는 동안 나는 얼른 거실로 나왔다. 그래도 다행히 그렇게 네 사람은 잘 어우러져 화목한 가족의 분위기를 내고 있는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새아들은 나에게 인사를 건네며 담에 저녁이라도 먹자고 했다. 나도 알겠다고 반가웠다고 했지만 속으론 다시는 볼일이 없겠구나 생각했다. 보는게 더 이상하지. 아저씨는 낚시를 가시고, 새아들과 여자친구가 다른 일정으로 나가고 바로 고은이와 진솔이가 왔다. 고은이와 진솔이는 이모의 아들딸로 이종사촌들이다. 고은이랑은 내가 외가에서 자랐던 7살때까지 3~4년은 함께 지냈어서 그래도 어색하진 않았지만 진솔이는 이모의 장례식장에서 보고 두번째라 거의 말을 나누진 않았다. 그래도 음식을 편식하고 까탈스러운게 나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그런지 친숙하게 느껴졌다. 암튼 그렇게 고은이, 진솔이가 도착하고 중국집에서 짜장면과 탕수육등을 시켜 엄마랑 넷이 식사를 하고, 아픈 할머니 다리 위에 앉아서 할머니와 있다가 나왔다. 할머니는 일찍 나오는 나에게 서운함을 표시했지만 오래 있기 불편했기 때문에 서둘러 나왔다.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 방문이였다. 뭔가 화목한 그들의 사이에 낀 이물질 같은 느낌이였고, 엄마가 그동안 할머니의 병세때문에 스트레스를 이만저만 받은게 아닌것 같았다. 나에게 계속 할머니를 다음달에는 요양원에 보낼것이며, 할머니가 뭘 부탁할때마다 할머니에게 짜증을 냈다. 너무 불편한 순간이었는데 그동안 엄마를 할머니가 얼마나 괴롭혔을지 알거 같아서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냥 할머니의 마음도 엄마의 마음도 뭔지 대충은 알것같아서 너무 안타까웠다. 그리고 한편으론 내가 결국엔 7살 이후에는 그들과 함께 산 가족의 일원이라기 보다는 그냥 피만 나눈 사람이라 이제는 그 간극을 메우는 일이 개인적으로는 너무 불편하고 힘들었다. 이쪽도 가족이긴 하지만 이제는 내 가족은 아닌것 같은 느낌.

그래서 내 결론은 이제는 그쪽은 할머니의 부재가 나와의 관계의 맺음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더 외로운 일이지만, 오히려 보고 지내는게 더 외로워지는 일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앞에 언급한 코트쿤스트 처럼 아따맘마의 가족들처럼, 짱구의 신영만 봉미선 가족처럼 나는 그런 가족을 가질수는 없을것 같다. 그래도 위에 너무 부정적인 것만 언급했는데 외가에서 자라는 7년동안 나는 자유롭게 사랑을 받으며 컸다고 기억하고 있고, 이후에 새엄마와 아빠와 동생과의 가족도 행복하진 않았지만 부족함없이 지원받으며 자랐기때문에 장단점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자란게 내혼자 잘 큰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화목하고 양껏 사랑받은것만이 좋은 양분이 되는것이 아니라, 내가 겪은 나의 가족들과의 관계나 경험들도 누군가는 겪을수 없는 것이고 또 엄마가 두명이였기때문에 그에 파생되는 더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스펙트럼을 넓힌것이니 좋은 삶의 원천이 아니였나 갑자기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싶다. 그러네, 나도 어쨌든 내가 바라는 것은 아니였고 결핍은 있지만 어쨌든 내가 가지고 있는 가족들도 나의 삶의 원천이라는걸 깨달았다.

앞으로 지낼 시간들 동안에는 나의 삶의 원천들과 나쁜기억들 보다는 좋은 기억들만 나누고 살길 기도한다. 그리고 할머니가 제발 덜 아프시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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